'Writing'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0/07/13 자화상.
  2. 2009/12/14 '그 날'이 오면.
  3. 2009/02/05 시시껄렁한 산책이야기
  4. 2009/01/12 일기 : 찬공기 (2)
  5. 2009/01/12 아침드세요

자화상.

Writing 2010/07/13 03:20



자화상.




날을 쎄운 언 바람이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베어간다.

눈 길 위에 하얗게 뿌리박은 나무의 가지는
설원의 추위를 도망쳐 달아나다 얼어붙은
빛줄기처럼 아찔하게 뻗었다.

소름끼치도록 내 삶을 쏙 빼닮은 나무는
언젠가 도끼에 크게 찍힌듯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다.
과거 어느 시점엔가 감당해야했을 불가항력의 고통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그 상처에 손을 대면,
까마득한 비명소리가 손끝을 타고
과거로부터 흘러들어 지금의 고막을 울린다.


콧잔등이 시큰하다, 거울을 보자.
거울에 비친 내 눈에는 기억들이 찰랑이고
이따금 흐르며 구석구석 파아-랗게 얼어있다.

눈더둥을 검지로 더듬어
기억의 광장 한가운데로 나를 내던진다.
어깨를 치고 지나는 사람과
나를 안아주고 지나는 사람이 같은 시공을 교차하고,
나는 혼을 잃고 주저앉아 지난 시간을 센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내 등에 귀를 대고
내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예수가 서있다.

차갑고 분주해보이지만 그
 시공의 단면은 뜨겁게 잔잔하며,
감사가 만나(manna)처럼 눈꽃이 되어 내리는 이 곳.
박재훈의 삶이다.

GyoolGoon.
200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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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Writing 2009/12/14 22:58

 






‘그 날’이 오면.

 






GyoolGoon.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2010년 문집에 실은 내용.

 
  닳아빠진 신발바닥 틈으로 새어들어 온 빗물에 말초신경이 찌릿하게 얼어붙었다. 비오는 날에 이런 일이야 휴지통에 던져 넣은 우유팩이 휴지통 모서리를 맞고 튀어나오는 일만큼이나 비일비재하니 한숨 한모금이면 쉽사리 뱉어낼 수 있는 일이지만, 한기가 뇌량에 뻗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물기를 털어내는 다리는 한쪽뿐이라는 사실이 잠깐 아이를 감상에 잡아둔다.

수술후유증으로 전형적인 후천적 지체장애를 얻어 발육이 비정상이었던 전교 키번호 1번의 땅꼬마는 13년 전 13개의 초를 들고 무시무시하게 큰 학교를 걸어 나오며 꿈을 꾸었다. 초들을 반으로 잘라서라도 26개를 만들고 싶었던 그 시절, 꿈속의 '날'에 닿으면 세상을 반쯤은 갖게 될 줄 알았던 그 시절, 작은 아이는 머릿속에 수만가지 모양으로 '오늘의 아이'를 그려내었다. 의젓하게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모니터 앞에서 채점을 하던 날, 그리고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합격'소식을 듣던 날, 단 한 번도 아이에게 두꺼운 얼굴의 가면을 벗어보인적 없었던 아버지는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업고 한 걸음에 동네 한 바퀴를 달려 돌아오셨다. 수많은 대자보들과 무채색의 마이크 발언 소리가 온 캠퍼스를 가득 채우던 낭만적인 날들의 한 가운데, 아이는 아이보리 빛의 인본주의에 부풀어 '소리통'에 한껏 목청을 섞었다. 온 길을 뒤덮은 벚꽃을 밟고 지나면 핑크빛이 그대로 살갗에 배어들 것만 같던 날에, 아이는 배가 부르도록 길을 걸었다. 민주주의와 정의(正義)가 '장애'를 라이센스로 뒤집어줄 것만 같았던 그 날ㅡ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마취약에 취했고, 가느다란 빛의 모양을 한 꿈 사이로 코끝을 비릿하게 쏘는 전기톱 소리가 지나갔다. 그ㅡ, '그 날' 이후 코끝의 비릿함은 아이의 코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마취약 때문이었는지, 비릿한 톱 냄새가 끊임없이 아이를 취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벚꽃을 다시 밟았다. 벤치에 앉아 벚꽃잎 빗줄기 사이로 넘실거리는 햇살을 바라보는 길에 멀미가 날 즈음 슬로우모션으로 시야에 포착된 꽃잎을 잡으려 일어서는 찰라, 무릎이 부서져 내렸다. 아이가 꿈에서 깨어난 것은 그 때였다.

 

 

 

 

 


 

꿈에서 깨어난 그 아이는 갖고 싶어 했ㅐ 블던 26개의 초는 내팽개쳐둔 채, 몇 달째 부서진 무릎의 파편을 무겁게 쌓아두고서 정신없이 순서를 뒤지고 있다. 무릎의 파편들이 모두 순서를 되찾는 날 꿈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으로 돌아가는 날, '그 날(刀)'에 베인 심근을 이어낼 수 있으리라고ㅡ, 아이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Gyool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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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한 산





                    시원스럽게 뻗은 주상절리가 가슴 벅차게 빼곡한 절벽가를 걷다 다릴 헛딛다.



                  1.
                    떨어지고서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다릴 헛딛은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날 절벽으로 내던진 작은 자갈을 무심코 밟아 화나게 만든 왼발 검지 발가락에게 잘못이 있는 것인지, 
                    혹은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다가와 내 어안을 후려쳐 벙벙하게하더니
                    기어코 날 절벽가에까지 끌어당긴 바닷바람에게 잘못이 있는 것인지, 책임소지를 가르고 있는 것이다.


                  2.
                    실랑이를 벌인지 얼마나 되었을까. 문득 심장이 두근하고 무릎이 시큰하다. 

                    산보를 나선다. 휘파람을 불며 걷고, 거리에 흐드러진 과거들과 재회한다. 
                    걸음이 땅과 마주닿을 때마다 마른 길바닥은 발목을 질퍽하게 휘어감는다. 
                    다음 걸음을 옮길라치면 앞꿈치에 쏘아대는 욕지거리가 간지러워, 헛기침없이는 한 걸음 떼기가 여유찮다. 


                  3.
                    얼마나 걸어 온 것일까. 회상의 끄트머리가 갈기갈기 찢겨있다. 
                    나는 헨젤마냥 사방으로 흩어진 녀석들의 혈흔을 쫓아 뛰기 시작한다. 

                    아차ㅡ, 
                    아름드리 나무가 내 머릴 들이 받는다. 눈을 뜬다.
                    무시무시하게 시퍼런 바닷물이 뒷통수를 통쾌하게 갈긴다.


                  1.
                    머릴 박고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다시 아름드리 나무가 내 머릴 들이받은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Gyool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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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찬공기 (2)

Writing 2009/01/12 03:47






일기 : 찬공기 (2) 







네가 그리워서

창문을 연다. 날이 차다.


칼바람이 호흡에 따라 들어와
내 가슴깊이 후려친다.
날숨으로 녀석을 내 쫓아보지만
마음같지 않다.


내 안에서 너의 의미를

지워버린다면 난 편해질 수 있을까 -


사랑해

너 때문에 내 가슴에 금이 가도
그것이 우리 사랑의 진실된 증거가 됨을
확신하고있기에ㅡ


날 그토록 괴롭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 ㅡ 너를 사랑해










2008. 12. 31.
Gyool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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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드세요

Writing 2009/01/12 03:44





아침드세요 





똑똑 - ,

안녕하세요.


유난히 칠흑같던 지난 밤 ,
달님향해 주문하신
아침을 가져왔습니다.


서둘러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놓고
팔을 뻗어 아침을 드세요.


빛나는 들판위에

당신의 시선이 달리고
손바닥엔 한웅큼
햇살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똑똑 - ,

저는 내일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아침,

맛있게 드셨습니까?







 


2008. 4. 20.
Gyool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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